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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문학

해외에서 공부하는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글 < 새벽에 홀로 깨어 - 최치원 선집 >

 

 

 

 

 컴컴한 밤 같은 신라 말기에 시대와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선비로서의 양심을 끝까지 견지하다 홀로 빛을 발하며 스러져 간 외로운 존재가 있었다. 고운 최치원은 당시 세계 제국이었던 중국 당나라에서도 통용되는 보편성의 높이에 도달한 빼어난 문학가이면서도, 신라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은 작가였다. 

 

 최치원은 열두 살 나이에 해외 유학길에 오른, 이른바 조기 유학생이었다. 어려서 당나라에 유학을 가 빈공과라는 과거 시험에 합격했으며, 이후 당나라에서 문명을 크게 떨쳤다고 한다. 귀국 후 국정에 참여하여 신라 사회의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좌절되자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였다. 신라 말기 최고의 지성인이었으며 시대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선비였다. 

 

너는 바다 밖에서 새로 불어와 

새벽 창가 시 읊는 나를 뒤숭숭하게 하지.

고마워라, 시절 되면 돌아와 서재 휘장 스치며

내 고향 꽃피는 소식을 전하려는 듯하니

                                                                   - 봄바람 -

 

가여워라 고운 빛깔로 바닷가에 서 있건만

어느 누가 좋은 집 난간 아래 옮겨 심을까.

뭇 초목과 다른 품격 지녔건만

지나가는 나무꾼이나 한 번 봐 줄는지.

                                                                   - 진달래 - 중에

 

 최치원이 고향 꽃피는 소식을 전하려는 봄바람을 보며 고향에 대해 그리워하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다. 진달래라는 시를 통해 진달래를 자신의 모습으로 투영시켜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알릴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저 높은 바위 꼭대기 하늘에 닿을 듯

바다에 해 돋자 한 송이 연꽃으로 피네.

 

형세 가팔라 뭇 나무 범접을 못하고

격조 높아 오직 구름과 안개만 벗 삼네.

 

차가원 달은 새로 내린 눈으로 단장하고

옥 굴리는 맑은 소리 작은 샘에서 솟아나네.

 

생각건대 봉래산도 다만 이와 같으리니

달밤이면 여러 신선 모이리라.

                                                          - 바위 봉우리 -

 

 바위 봉우리에 대한 시적 표현이 매우 아름답고 참신하다. 바다에 해 돋는 시간에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서있는 바위 봉우리를 연꽃이 피는 모습으로 묘사한 표현이 참 아름답다. 중국 전설 속의 산중에 하나인 봉래산에서 달밤에 여러 신선이 모인다는 표현을 보고 시적 화자가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상상력이 풍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학문에 뜻을 품은 이에게 최치원이라는 인물이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보여주며 충분한 지적 자극을 줄 것이다. 한편, 지금 외국에 나가 혼자 공부하는 이나 벗과의 이별로 슬퍼하는 이라면 최치원의 서정시를 읽으며 많은 공감을 얻을 것이다. 해외에서 공부 중이거나 신기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남다른 상상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최치원이 선사하는 이야기들을 소개해 주고 싶다.